후지이 마쓰다이라가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후지이 마쓰다이라가는 마쓰다이라 나가치카의 아들 마쓰다이라 도시나가를 시조로 하는 가문이다. 미카와국 후지이를 영유하여 후지이 마쓰다이라 가문으로 불렸으며, 에도 시대에 다이묘로 발탁되어 여러 번의 가증 전봉을 거쳐 시모사국 고가번을 거쳐 데와국 가미야마번을 영유했다. 메이지 시대에 가미야마번주 마쓰다이라 노부나가가 오우에쓰 열번 동맹에 가담하여 관군을 배반한 죄로 가문이 쇠퇴했고, 방탕한 생활로 인해 종가는 몰락했다. 후지이 마쓰다이라가는 종가와 분가로 나뉘며, 분가는 시나노국 우에다번을 영유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마쓰다이라씨 - 마쓰다이라 노부미쓰
마쓰다이라 노부미쓰는 무로마치 시대 마쓰다이라 씨의 당주로서 사료에서 실존이 확인되는 최초의 인물이며, 가문 기반을 다지고 세력을 확장하여 센고쿠 다이묘로 성장하는 데 기여했고, 많은 자녀를 통해 도쿠가와 막부의 기반을 닦았다. - 마쓰다이라씨 - 고이 마쓰다이라가
고이 마쓰다이라가는 미카와국 고이 지역을 발상지로 하는 마쓰다이라 씨의 지류로, 마쓰다이라 타다카게를 시조로 하여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섬기며 에도 시대에 요리아이 가문으로 성장했고, 이후 분가에서는 막신과 봉행 등을 배출했다. - 후지이 마쓰다이라씨 - 마쓰다이라 노부유키 (1790년)
마쓰다이라 노부유키(1790년)는 가미야마번의 7대 번주이며, 번교 덴포칸을 설립하고 번 통치에 힘썼으며, 1831년 장남에게 번주직을 물려주고 은거했다. - 후지이 마쓰다이라씨 - 다카사키번
에도 시대 고즈케국 다카사키 지역을 다스린 다카사키번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이 나오마사에게 성을 건설하게 하면서 시작되어 여러 가문이 통치했으며, 막부 말기 덴구토 당의 난 진압, 보신 전쟁 때 신정부군에 합류 후 폐번치현으로 폐지되었다.
후지이 마쓰다이라가 | |
---|---|
기본 정보 | |
가문 이름 | 후지이 마쓰다이라 가문 |
가문 문장 | Japanese Crest Maru ni Katabami.svg |
가문 문장 명칭 | 마루니 가타바미 (丸に酢漿草) |
본성 | 칭·세이와 겐지 |
가조 | 마쓰다이라 도시나가 |
가문 유형 | 무가 화족(자작) 평민 |
출신지 | 미카와국누카타군 후카미조 |
근거지 | 미카와국 누카타군 후카미조 도쿄부도쿄시에바라구 |
주요 인물 | 마쓰다이라 노부미치、마쓰다이라 다다카타 |
분가 | 우에다 마쓰다이라 가문 |
2. 종가
마쓰다이라 나가치카의 다섯째 아들 도시나가를 시조로 한다. 미카와국(三河国) 헤키카이군(碧海郡) 후지이(현재의 아이치현 안조시 후지이정)를 영유했기 때문에 후지이 마쓰다이라 가문이라고 칭한다. 도시나가는 1560년 오와리국(尾張国) 마루네성(丸根城) 공격에서 전사했지만, 그 아들 노부카즈가 1601년에 다이묘(大名)로 발탁되어 히타치국(常陸国) 니하리군(新治郡) 쓰치우라번(土浦藩) 3만 5천 석을 영유했다. 그 후 고즈케국(上野国) 다카사키번(高崎藩) 5만 석, 탄바국(丹波国) 사사야마번(篠山藩) 5만 석, 하리마국(播磨国) 아카시번(明石藩) 7만 석, 야마토국(大和国) 고리야마번(郡山藩) 8만 석으로 영지가 늘어나거나 바뀌다가, 1685년에 시모사국(下総国) 고가번(古河藩) 9만 석으로 옮겨졌다.
1693년 다다유키가 정신 질환으로 개역(改易)되었으나, 이후의 자세한 내용은 "가미야마 번과 메이지 유신" 섹션에서 다루고 있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메이지 유신 이후, 1869년 화족(華族) 제도가 탄생하고, 1884년 화족령(華族令) 시행으로 후지이 마쓰다이라가는 자작(子爵)에 임명되었으나, 1908년에 작위를 반납하였다. 이후 종가의 몰락 과정은 "종가의 몰락과 사회적 변화" 섹션에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2. 1. 개요

2. 2. 가미야마 번과 메이지 유신
마쓰다이라 다다유키는 겐로쿠 6년(1693년)에 정신 질환으로 개역(改易)되었으나, 다다유키의 동복 동생이자 야마토국 고류번(興留藩) 주인이었던 마쓰다이라 노부미치에게 가독 상속이 인정되었다. 마쓰다이라 노부미치는 빗추국(備中国) 니와세번(庭瀬藩) 3만 석을 거쳐 겐로쿠 10년(1697년)에 데와국(出羽国) 가미야마번(上山藩) 3만 석으로 옮겨졌다. 이후 가미야마번에 정착하여 폐번치현까지 존속했다. 메이지 원년(1868년), 마쓰다이라 노부나가가 오우에쓰 열번 동맹(奥羽越列藩同盟)에 가담하여 관군을 배반한 죄로 관위 박탈 및 은거 처분을 받고, 3000석 감봉(減封)된 2만 7000석이 동생 마쓰다이라 노부야스에게 상속되었다. 메이지 2년(1869년) 6월 20일 판적 봉환(版籍奉還)에 의해 가미야마 번지사로 임명되어 메이지 4년(1871년) 7월 14일 폐번치현까지 번지사를 역임했다.2. 3. 종가의 몰락과 사회적 변화
마쓰다이라 나가치카의 다섯째 아들 도시나가를 시조로 하는 후지이 마쓰다이라가는 미카와국 헤키카이군 후지이(현재의 아이치현 안조시 후지이정)를 영유했기 때문에 후지이 마쓰다이라 가문이라고 불렸다. 도시나가는 1560년 오와리국 마루네성 공격에서 전사했지만, 그의 아들 노부카즈가 1601년에 다이묘로 발탁되어 히타치국 니하리군 쓰치우라번 3만 5천 석을 영유했다.[1] 그 후 고즈케국 다카사키번 5만 석, 탄바국 사사야마번 5만 석, 하리마국 아카시번 7만 석, 야마토국 고리야마번 8만 석으로 영지가 늘어나거나 바뀌다가, 1685년에 시모사국 고가번 9만 석으로 옮겨졌다.[2]1693년, 다다유키가 정신 이상으로 개역(영지를 몰수당함)되었지만, 다다유키의 동복 동생이자 야마토국 고류번 주인이었던 마쓰다이라 노부미치에게 가독 상속이 인정되어 빗추국 니와세번 3만 석을 거쳐 1697년에 데와국 가미야마번 3만 석으로 옮겨졌다.[3] 이후 가미야마번에 정착하여 폐번치현까지 존속했지만, 1868년에 노부나가가 오우에쓰 열번 동맹에 가담하여 관군을 배반한 죄로 관직을 박탈당하고 은거하게 되었다. 3000석이 감봉(영지를 줄임)된 2만 7000석이 동생 노부야스에게 상속되었다.[4] 1869년 판적봉환에 의해 가미야마번 지사로 임명되어 1871년 폐번치현까지 번 지사를 역임했다.[5]
1869년 6월 17일, 공가(귀족)와 다이묘(무사) 가문이 통합되어 화족(귀족) 제도가 탄생하자, 후지이 마쓰다이라 가문도 다이묘 가문으로서 화족에 포함되었다. 1884년 7월 7일 화족령 시행으로 화족이 다섯 등급으로 나뉘자, 같은 달 8일에 노부야스가 자작(다섯 등급 중 네 번째)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노부야스는 방탕한 생활로 몸을 망쳐 1908년 10월 19일에 작위를 반납했다.
그 후 노부야스는 아사쿠사구 사카에큐초에서 시바구 니혼에노키초로 이주했고, 1917년 10월 23일에 사망했다.
노부야스의 미망인 타마(마쓰다이라 스케나가의 딸)는 아들 노부히데에게 걸맞은 집에서 신부를 맞이하여 화족의 지위를 회복하려 했지만, 노부히데는 어머니와 일족이 반대하는 여자와 결혼하고 집을 나가 범죄를 저질러 전과 2범이 되었다. 1932년 10월 1일자 『도쿄 아사히 신문』에도 "어린 시절부터 방탕한 악행을 일삼아 집에 접근하지 않는다"라고 보도되었다. 마쓰다이라 가문은 노부히데를 폐적하고 차남 노부야스가 가문을 이었다. 노부히데는 일족의 수치로 여겨져 가계도에서도 지워진 것으로 보인다.
3. 분가
마쓰다이라 노부요시의 차남 타다하루를 초대 영주로 하는 분가이다. 스루가국다나카번 2만 5천 석, 토토미국가케가와번 2만 5천 석, 탄바국가메야마번 3만 8천 석, 무사시국이와쓰키번 4만 8천 석, 타지마국이즈시번 4만 8천 석을 거쳤다.
3. 1. 우에다 번과 메이지 유신
호에이 3년 (1706년), 타다하루가 시나노국 우에다번 5만 8천 석에 봉해진 이후 메이지 유신까지 이 지역을 다스렸다. 마지막 번주 타다노리는 보신 전쟁에서 관군에 참여하여 공을 세워 3000석의 상전록을 받았다.[1]1869년 6월 17일, 공가와 다이묘 가문이 통합되어 화족 제도가 생겨나면서, 이 가문도 다이묘 가문으로서 화족에 포함되었다.[2][3] 1884년 7월 7일 화족령 시행으로 화족이 오작제가 되자, 같은 달 8일에 구 소번 지사[4]로서 타다노리가 자작에 임명되었다.[5]
타다마사 시대인 쇼와 전기, 이 자작가의 저택은 도쿄시 에바라구 시모신메이 정에 있었다.
4. 계도
후지이 마쓰다이라가는 종가(야마시로노카미 가문)와 분가(이가노카미 가문)로 나뉜다. 두 가문의 계보는 아래와 같다.
'''범례'''
- 실선은 친자식, 점선은 양자
- 숫자는 가독 계승 순
4. 1. 종가(야마시로노카미 가문) 계도
(마쓰다이라 종가)(후쿠가마 마쓰다이라가)
(사쿠라이 마쓰다이라가)
(도조 마쓰다이라가)